성 빠코미오(292-346)
우리는 앞 장에서 최초의 위대한 은수자, 안또니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최초의 위대한 회수도승, 빠코미오를 살펴보기로 하자.
I. 불길처럼 타올랐다 스러진 빠코미오 공동체
빠코미오가 기초를 세운 최초의 회수도승생활은 어떻게 보면 짚단에 붙은 불과도 같다. 이 비유는 한편으로는 옳고 한편으로는 틀렸다.
옳다고 하는 이유는, 짚단에 붙은 불이 많은 열과 빛을 내면서 순식간에 퍼지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빠코미오 공동체 역시 마찬가지로 매우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 공동체는 시작부터 벌써 수도회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자체의 법률 및 구조를 가진 통일된 조직체였던 것 같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빠코미오 공동체는 아주 거대한 수도회였다. 예로니모의 말에 따르면 수도승들의 숫자가 오만 명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과장된 것이다. 만 명이 보다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엄청난 숫자이다.
빠코미오 공동체의 수도승들은 또한 대단한 빛과 열을 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당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졌으며 가장 뛰어난 사람들로 되어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들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면, 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거나, 아니면 가시아노가 그랬듯이 짐짓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끝으로 빠코미오 공동체는 짚단에 붙은 불이 그러하듯 오래가지 못했다. 놀라운 발전이 있은 후, 빠코미오의 수도승 운동은 급속한 쇠퇴를 맞았는데, 5세기 초 무렵에는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
틀렸다고 하는 이유는, 이 최초의 회수도승생활 형태는 짚단에 붙은 불처럼 재만 남긴 것이 아니라, 교회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는 다소 빈약했던 그 영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제도적 구조 때문이었다. 그 점이 이후의 수도승생활에 영향을 주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동방 규칙서’는 부분적으로 빠코미오의 규칙을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의 성 베네딕도 수도규칙 역시 빠코미오의 규칙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는데 적어도 스무 구절 안에서 그 영향이 나타난다.
빠코미오의 규칙은 심지어 예수회같이 수도승생활에 정반대되는 제도들에도 영향을 끼쳤다.
II. 빠코미오의 생애
빠코미오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었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그가 우리에게 남겨놓은 글들은 몇 권의 지침서들과 수도 규칙들 외에는 별로 없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는 그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 힘들다. 그러나 네 가지 매우 다른 자료들이 있는데, 빠코미오가 이 중 어떤 것도 쓰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에 관한 전기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빠코미오의 제자들이 쓴 그의 전기가 한 가지가 아닌 여덟 혹은 아홉 가지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너무도 빨리 제자들 사이에 의견 대립이 생겼다. 수도승 삶에 대한 이상이 모두 똑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각자 자신들의 관점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빠코미오의 전기를 기록하였다. 그의 생애에 관한 모든 글들은 빠코미오의 각기 다른 면들을 보여준다.
여덟 혹은 아홉 가지의 전기들 중 세 가지는 좀더 오래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 셋은 완전한 형태로 -적어도 거의 그러하다-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들을 지적할 때는 그 쓰여진 언어에 따라서 부른다. 즉 두 가지 콥트 방언으로 된「보해릭 (Bohäric) 생애,「새딕(Saïdic) 생애」와「그리이스 생애」등이다. 나머지들은 단지 단편들일 뿐이다.
안또니오처럼 빠코미오 역시 이집트 사람이었지만, 그는 원래 그리스도교인은 아니었다. 그는 292년에 테베보다 약간 더 상류지역인 나일강 근처 스네(Sne)에서 유복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전기들을 보면 그에게는 형 하나와 여동생 하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이집트는 로마제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312년 막시민 다이아(Maximin Daia) 황제는 리치니우스(Licinius)와 전쟁을 하기 위해 군인들이 필요했다. 당시에는 군인이 없을 경우 사람들을 붙잡아 갔다. 즉 이들은 강제로 징집되었다. 몇 명의 군인들이 그의 마을로 와서는 그를 다른 젊은 사람들과 함께 붙잡아 가버렸다. 그 당시 대략 스무 살이었던 빠코미오는 싫든 좋든 군복무를 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알렉산드리아로 가게 되었다. 포로로 잡힌 빠코미오와 그의 동료들은 나일강에서 배를 타고 테베 (Thebes)로 내려갔다. 제일 큰 그 도시에서 그들은 항해를 멈추고 밤을 보냈다. 군인들이 그들을 마을에 있는 감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그곳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에게 음식을 주고 도움을 베풀었다.24)
그가 그리스도교인들로부터 받은 이러한 사랑이 이교도인이었던 빠코미오를 감동시켰다. 이 일은 그의 전생애동안 잊혀지지 않았다. 그가 볼 때, 그리스도교인이란 모든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러한 깨달음을 안고 고향에 돌아오게 된다. 그후 이 생각은 그의 수도승생활 개념에 영향을 주었다. 즉 수도승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형제들을 섬기는 것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빠코미오는 안티노에(Antinoe)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나일강 상류로 다시 올라갔지만 고향에 가지는 않았다. 그는 하느님을 섬기며 안또니오처럼 되고 싶어했다. 세네셋(Seneset)이라는 마을 근처에 살면서, 313년경 거기서 세례를 받았다. 사람들을 섬기겠다고 한 약속대로,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해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 후 빠코미오도 안또니오와 마찬가지로, 근처에 사는 한 수행자의 제자가 되었다.25) 그 역시 안또니오처럼 많은 유혹을 겪었다. 회수도승생활의 창시자에게는 새로운 어떤 것을 시작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안또니오가 한 똑같은 방법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생각은 달랐다.
323년경 빠코미오는 빨라몬(Palamon)이라는 수행자를 떠나 타벤네시(Tabennesi)라고 하는 한 버려진 마을로 가서 살았다. 그는 늘 은수자가 되고 싶어했던 것이다. 빠코미오의 형 요한도 함께 와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밤 빠코미오는 어떤 환시를 보았다. 하느님이 개입하신 것이다.26) 다음날 두 형제들 사이에 의견 대립이 생겼다. 요한은 그냥 작은 독방에서 계속 살면서 은수 생활을 충실히 하기를 바랬으나, 환시를 보고 난 빠코미오는 수도원을 세우고 싶어했다.
실제로 사람들이 모여왔다. 빠코미오에게는 사람들을 자기 주위로 모으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의 생애집에선 이를 그의 착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젊은 사람들이 빠코미오를 찾아 왔고, 빠코미오는 그들을 가르쳤다. 또한 그들을 섬김으로써 자신의 첫 영감에 충실하였다.27) 여기서 우리는 그가 맨 처음 경험한 그리스도교인들의 사랑이 그의 삶에 얼마나 깊게 각인되었는지 볼 수 있다. 빠코미오는 섬기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착한 수련자들이 있는 동안에는 모든 일이 잘 되어 갔다. 젊은이들은 그의 모범으로 자극을 받았으며 일을 함께 하고 싶어했다. “살든지 죽든지 이분과 함께 합시다. 그러면 그분은 우리를 하느님께 똑바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라고 그들은 말했다. 그러나 마음씨 좋지 못한 사람들이 왔을 때는 모든 일이 엉망이 되었다. 빠코미오는 좌절을 경험했으며 거기서 교훈을 얻었다.28)
그 교훈은 이러했다. 즉 수도원은 비협조적이라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시도로서 빠코미오는 자신이 회개 때 받은 빛에 충실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었다. 그래서 그 답례로 어떤 것을 받아 그것으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의 음식값을 지불했다. 빠코미오는 다음과 같은 규칙을 그들에게 주었다. 즉 각자는 자급자족하면서 자신의 일을 가져야 할 것이나, 수도원의 물질적 필요를 위해 수도승들을 위한 것이든 손님들을 위한 것이든 음식을 내어놓아야만 한다. 수도승들이 빠코미오에게 자신들의 봉헌물을 가져가면, 빠코미오는 그것으로 그럭저럭 살림을 꾸려갔다. 그것은 소유물의 나눔이 전혀 없는 하나의 기숙사와 같았다.
실패를 맛본 뒤, 빠코미오는 안정된 공동체가 있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공동 소유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빠코미오는 모든 것을 달리 조직했으며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구세주를 따르기 위해 자신들의 가족과 소유물을 포기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로서 공동생활(그리이스말로 Koino-bios)과 코이노니아(koinônia)라고 하는 공동체의 설립을 제안했다.
이때부터 빠코미오의 코이노니아가 실제로 출범했으며 매우 빨리 퍼져나갔다. 빠코미오가 살았던 나일강 상류 지역을 지도로 보면, 우선 그가 태어난 장소인 스네(Sne); 감옥에 갇혀 있던 수도 테베(Thebe); 풀려난 곳인 안티노에(Antinoe) 등이다. 또한 그가 건설한 공동체들이 표시된 것을 보면(작은 글자로 된 것), 땅의 경작이 가능했던 이집트 남부의 나일강 가에 수도원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적으로 또 공간적으로 매우 가까운 초기 네 개의 공동체들에 번호를 매겨 놨다. 첫 번째로 타벤네시 (Tabennesi), 두 번째로 프보우(Phbew) 등이다. 프보우는 나중에 수도회의 중앙 본부가 된 곳이다. 십자 표시들은 수녀들의 공동체를 가리킨다.
빠코미오는 346년 불과 54세의 나이로 전염병에 걸려 죽었다. 후계를 잇는 문제가 매우 어려웠으며 파벌까지 생겼다. 연장자들의 그룹과 젊은 세대의 그룹간에 대립이 있었다. 모두들 힘있는 사람에게 줄을 섰다. 빠코미오의 제자들 중 두 위대한 인물, 즉 나이든 세대에 속한 테오도로(Theodore)와 젊은 세대에 속한 호르시에시우스(Horsiesius) 가 얼마동안 이 거대한 수도회의 장상이 되었다. 테오도로가 368년에 죽고 이어서 호르시에시우스마저 387년에 죽자 모든 것이 허물어졌다. 개혁을 위한 노력이 쉐누트 (Schenoudi 혹은 chenoute)의 백색 수도승들에 의해 있기는 했지만, 성공하진 못했다. 잔인한 아빠스가 당근 대신 채찍을 휘둘러 선의의 사람들을 실망시켰던 것이다.
다행히 예로니모가 404년에 베들레헴에서 빠코미오의 규칙서 네 개와 11통의 편지, 테오도로의 편지 그리고 호르시에시우스의 책을 라틴어로 옮겼다. 이 번역물들 덕분에 빠코미오 공동체의 체험이 서방에 그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III. 코이노니아의 규칙 및 조직
우리가 앞서 제2장 ‘수도승생활 개관’에서 보았듯이, 빠코미오 공동체는 참으로 하나의 작은 마을과도 같았다. 거대한 벽이 수도원을 외부와 차단시켰다. 여기에는 단 하나의 문과 출입을 관리하는 문지기 한 명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때문에 수도원과 바깥 세상 사이에 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수도원은 그들만의 작은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 작은 세상은 매우 훌륭히 조직되었다. 작은 마을의 각 집(house)에는 약 40명의 수도승들이 살았는데, 이들은 모두 같은 기술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래서 빵 굽 는 사람들의 집, 요리사들의 집, 구두 만드는 사람들의 집, 필사자들의 집 등등이 있었다. 각 집 안에서 수도승들은 ‘집 책임자’(housemaster)의 권한 밑에 있었다. 그 ‘집 책임자’가 ‘장상’(superior)이었으며 ‘제 2인자’(second)가 그를 보좌했다.
셋 혹은 네 개의 집들이 모여서 하나의 ‘부족’(tribe)을 이루었다. 하나의 수도원은 열 개의 부족으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한 집에 40명 씩 30개 혹은 40개의 집들을 합치면 한 수도원 안에 천 명 이상의 수도승들이 살고 있었던 셈이 된다.29)
각 수도원의 지도부에는 한 명의 아빠스와 한두 명의 재산관리 책임자(당가)가 있었다. 수도원의 수는 남자가 9개 여자가 3개였다. 빠코미오의 여동생 마리아는 빠코미오의 지도 아래 타벤네시 근처에서 동정녀들을 위한 수도원을 세웠다. 이어서 두 개가 더 생겼는데 하나는 츠미네(Tsmine) 근처이고 다른 하나는 프보우(Phbew) 근처에 있다. 이 곳의 조직 역시 모든 것이 잘 되어 있었다. 수녀들은 수사들의 규칙을 복사하여 가졌다. 베드로라고 하는 담당수사가 그곳에 있으면서 수녀들에게 영적 도움을 주었다.30)
이상의 12개 수도원들이 하나의 코이노니아를 형성했으며, 그들 모두의 영적 사부인 빠코미오와 프보우에 사는 총 재산 관리 책임자가 전 코이노니아를 다스렸다. 매년 모든 수도승들이 부활절을 지내기 위해 프보우에 모였으며, 8월에는 일종의 과실 및 화해의 총회를 개최하였다.
이러한 전체 수도회의 구조는 코이노니아의 생활이 한 아빠스 아래 이루어졌음을 입증한다. 각각의 집에서는 한 장상이 아빠스의 역할을 했다. 한 아빠스 아래서의 생활이면서 동시에 한 규칙 아래서의 생활이기도 했다. 빠코미오는 이미 그 전에 몇 개의 가르침들을 성서로부터 골라 기록해 놓았다. 수도회가 발전함에 따라 규칙을 좀더 자세히 설명하고 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그 결과 비록 필시 빠코미오 자신이 쓴 것은 아니지만, “빠코미오의 규칙”이라 부르는 네 개의 가르침 시리즈가 탄생했다. 이 글들 안에 양성을 위한 어떤 지침들이 있는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분명하지는 않다. 그 문제를 연구한 사람들의 의견이 모두 다르다.
빠코미오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계명」(praecepta)31),「계명과 제도」(praecepta atque instituta),「계명과 심판」(praecepta atque judicia),「계명과 법」(praecepta et leges).
빠코미오의 규칙은 확실히 계명들의 모음집이다. 공동체를 위해 쓰여진 이 첫 번째 규칙은 영성이 거의 없는 “관례들”이었다. 그러나 규칙이 성서를 바탕으로 한 점과 과도함을 벗어나서 놀라운 균형과 자유의 감각을 지닌 사실은, 빠코미오의 규칙이 전통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했다. 성 베네딕도는 빠코미오의 규칙 안에서 몇 가지 점들을 채택했다.
IV. 빠코미오 영성
이 네 가지 규칙들은 다소 무미건조한 법규들의 모음집이다. 이들은 성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신학은 매우 초보적이어서 영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안에서 그리고 그 삶과 글들을 통해 빠코미오 영성의 몇 가지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1. 이중적인 면
보다 더 이해를 돕기 위해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빠코미오는 안또니오보다 30년 뒤에 태어났으며 10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최초의 회수도승생활 창시자로 볼 수 있는 이 사람은 독수도승으로 출발했다. 회수도승생활이 아직 표준화되지 않은 반면에 안또니오의 은수생활은 이미 이집트 안에서 상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수도승이 되고 싶어했던 다른 모든 이들처럼 빠코미오도 은수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형 요한과 논쟁을 벌였다. 왜냐하면 그의 형제가 은수생활의 고독을 계속 지키기를 원한 반면, 빠코미오는 자신이 들었던 음성을 충실히 따라서 다른 이들을 위해 어떤 것을 세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독수도승들 가운데서 회수도승생활의 탄생으로 우리는 빠코미오 수도승생활의 뿌리에 있는 두 가지 상반된 열망을 보게 된다. 즉 한편으로 사막 교부들에서 볼 수 있는 개인적인 완덕에 대한 관심이 있었는데, 그들은 각자가 자신의 기질과 은총의 부름에 따라서 그들 자신의 길을 찾았던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회수도생활의 필수인 공동생활의 면이 있었다. 이 둘은 조화되어야만 했다.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빠코미오가 발견해낸 해결책은 타인을 섬기는 중에 각자는 자신의 완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신상의 개인적인 완덕이란 이 지상에선 실현될 수 없는 것임을 그는 깨달았다. 즉 이 완덕의 이상은 형제 공동체 안에서만 찾아질 수 있다. 즉 거룩한 코이노니아인 그곳에서 모든 이들은 영적 전투 중인 서로를 돕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빠코미오 영성의 첫 번째 역설인 상반된 두 가지의 조화를 보게 된다. 즉 개인의 완덕은 공동체 안에서, 형제들을 섬기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빠코미오라는 강렬한 인물로부터 또 하나의 역설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은 것이다. 빠코미오의 코이노니아가 분명히 회수도승들에게 적용된 것이지만 그곳에는 초심자들이 아빠스나 원로로부터 지도를 받았던 이집트 북부의 독수도승들로부터 취해진 요소가 있다. 빠코미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으며, 성령께서 그 안에 머물러 계시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사람에게서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바로 그의 주위로 그렇게 많은 수도승들이 모여든 원인이었다. 그리하여 한편에서는 이집트 북부의 수도승 생활과 같은 수직적인 회수도승생활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빠코미오의 수도승들은 자신들의 사부로서 빠코미오를 원했기 때문이다.32) 심지어는 수도회가 굉장히 커진 그 뒤에도, 비록 빠코미오가 뽑은 수도원(monastery)의 장상이 그의 중간 책임자이긴 했지만, 빠코미오는 여전히 사부였다. 실제로 수도승생활의 이 수직적인 면은 우리가 이미 보고 있는 교계제도를 통하여 표현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빠코미오의 영성은 공동체 영성이었다. 여기에 수평적인 회수도승 생활이 있다. 빠코미오의 회개는 테베의 그리스도교인들의 사랑으로 인해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머리 속에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던 예루살렘 원시 공동체의 모습이 늘 떠나지 않았다. 하늘이 확인해 준 그의 소명은 “사람들을 함께 모으는 것”이었다. 그는 정말이지 수도승들의 사부가 되기보다는 공동체의 사부가 되고자 했다. 상호 섬김의 공동체, 거룩한 코이노니아는 빠코미오의 영성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사랑을 드러내었다.
사실 그리스도교인 삶의 기초인 사랑은 또한 빠코미오의 입법 원리였다. 「계명과 심판」(praecepta atque judicia)의 서두에서 말하듯이, “사랑은 모든 법을 완성한다.” 사랑의 대상이 하느님과 형제들, 이 둘인 것처럼 빠코미오의 영성은 하느님과의 일치와 형제들과의 일치라는 두 축을 따라서 발전하였다.
2. 하느님과의 일치
첫째로 하느님과의 일치. 빠코미오는 성령에 의해 움직여지는 사람, 즉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기도로 밤을 꼬박 새울 수 있었으며 며칠 밤을 그렇게 보낼 수도 있었다. 이에 관해서는 그 생애에 관한 많은 글들이 증언해주고 있다.33) 하느님과의 일치는 그에게 전적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규칙서는 특히 성서와 공동기도를 강조한다. 그렇다고 해서 금욕생활이 잊혀진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실천적이고 체험적인 사람이었던 빠코미오는 하느님과의 만남이 하느님아닌 모든 것, 즉 세상, 자신의 가족, 특히 자기 뜻, 죄의 근원 등을 포기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의 모든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들은 수도적 회개의 본질을 담고 있 다.
1) 성서
기도와 성서 독서는 빠코미오 영성의 한 쌍이다. 그 당시 사람들은 기억력이 매우 좋았다. 누가 수도원에 들어오게 되면 그는 수련자로서 먼저 글 읽는 법을 배워야만 했 다. 그런 다음 성서의 어떤 구절들을 마음으로 배우고 이를 묵상하였다.34) 초기 빠코미오 수도승들에게 있어 ‘묵상한다는 것’은 어떤 텍스트를 숙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속해서 되씹는 것이었다. 즉 머리 속으로 암송하든지 아니면 작은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이다. 기도하러 갈 때, 식당이나 자신의 독방에 있을 때, 일하러 갈 때, 작업 중일 때, 수도승은 항상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해야만 했다.35)
성서는 빠코미오 수도승 삶의 규칙이다. 일주일에 세 번 여러 장상들이 성서를 해설하였다. 수도승은 그 설명을 들은 후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을 형제들과 나눈 다음 자신의 독방으로 가서 그것을 묵상하였다. 빠코미오가 복음을 해설할 때 그가 자신의 형제들에게 준 대단히 깊은 인상이 그의 전기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36)
2) 성무일도
성당에서 “쉬낙세스”(Synaxes)라고 하는 두 번의 집회가 있었다. 한 번은 낮에 그리고 또 한번은 밤에 열렸다. 이 집회는 그렇게 긴 시간동안 하지 않은 것은 틀림없다. 또한 저녁에 기도의 모임이 있었는데 이는 성당보다는 각 집(house)에서 가졌다.
성당에서의 두 큰 공식 기도는 매우 단순하고 심지어는 초보적이며 사적기도와 별 다를 게 없었다. 시편이나 성서 구절들을 서로 주고받으며 주님의 기도와 침묵의 기도를 바쳤다. 기도 시간은 길었지만 수도승들은 한가로이 있지 않았다. 규칙서에 나와 있듯이 그들의 손은 밧줄을 꼰다든지 갈대 돗자리를 만든다든지하는 가벼운 일거리로 채워져 있었다.37)
하지만 그 기도가 단순하긴 했어도 빠코미오 수도승들에게는 대단히 중요했다. 그들이 매우 특별한 가치를 두고 있은 것은 기도 안에서 누리는 친교였다. 그들은 “둘이나 셋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곳에, 나도 그들 가운데 있습니다”하신 주님의 말씀에 큰 믿음을 갖고 있었다.
집에서 가진 저녁기도는 더욱 단순히 여섯 개의 시편과 여섯 개의 기도로 되어 있었다. 이는 규칙서에서 말하는 그대로이다.38)
3. 형제들과의 일치
하느님 앞에서 기도 안에서 누리는 친교는 빠코미오 공동체의 기초에 놓여진 것이 어
떤 것인지 드러낸다. 즉 그것은 바로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 같은 형제들의 단체이다. 실제로 이는 재산의 공동 소유에서 볼 수 있으며 여기서부터 여러 가지 결과들이 흘러 나왔다.
1) 재산의 공동 소유
이것의 상징은 단 하나의 문으로 잘 둘러쳐진 봉쇄된 울타리이다. 이 울타리는 두 세계, 즉 외부 세계와 코이노니아라는 공동 생활의 세계를 분리한다. 앞서 보았듯이 빠코미오는 초기의 고통스런 경험을 한 후 코이노니아의 모든 지원자들에게 재산의 공동 소유를 요구하였다. 그들은 재산을 가지고 있던가 아니면 맡기던가 할 수 있었다.
빠코미오의 의도는 물질적 재산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남들을 섬기는데 구체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내어놓음으로써 자신의 몸마저 공동체의 것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속박이기까지 한 이 섬김의 이상은 빠코미오 회수도승생활의 근본이요 ‘집의 책임자’와 그 밑에 있는 자들이 생활하는 ‘집’ 조직의 근본이다. 이렇게 서로에게 속박됨은 또한 모든 이의 종이 되신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수도승의 실제적 표현이 되었다. 빠코미오로서는 회수도승생활이 독수도승생활보다 더 나은 이유가 이러한 섬김이었다. 바실리오가 그 이상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빠코미오의 후계자인 호르시에시우스 또한 이 생각을 이어받았는데, 그에게 있어 공동체 생활이란 그 자체로 “하느님의 일” 즉 오뿌스 데이(Opus Dei)였다.
2) 결과
재산의 이같은 공동 소유가 상호 섬김을 가져왔지만, 구체적으로 이와 더불어 실생활에서 규칙 준수를 요구하였다.
(1) 동일한 생활 규칙
이 표현은 특별한 탐구를 나타내고, 물론 장상도 포함하여 규칙 준수가 모두 똑같이 이루어지도록 하려는 의도이다.
(2) 가난
이 이상이 요구하는 가난은 재산 포기로 특징 지워진다. 빠코미오 수도승들의 가난은 우선적으로 결핍이 아닌 공동생활이며, 또 금욕적 수행이 아닌 공동체 수행이었다. 바로 이것이 접착제가 되어 공동체가 결속된다.
(3) 노동
이것은 섬긴다는 생각에서 나왔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도우려는 뜻이었다. 빠코미오는 공동체의 소유물이 정말로 하느님께 속한 것임을 믿었다. 공동체 그 자체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가난한 이들과의 나눔은 덕이 아니라 일상적인 행위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4) 순종
공동체를 사랑하는데 해로운 자기애의 끈을 끊기 위해서 빠코미오는 순종을 역설했다. 그리하여 공동체 내에 있는 각자 각자는 자신의 권리, 자신의 욕구를 내세우지 않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순종 자체는 공동체적 특성을 지닌다. 독수도승들처럼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에서 어떤 수행자를 영적 사부로 모시고 한동안 예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 안에 가치를 지닌 순종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은 초보자들의 학교가 아니라 사랑의 길이며, 적어도 이 지상에서는 영구하고 결정적인 세상이었다.
여기서 순종의 세 가지 특성이 나온다.
[코이노니아]
이론적 원리 → 원시 그리스도교 공동체
실천적 원리 → 재산의 공동 소유; 모든 이들에게 법의 공평한 적용
상징 : 단 하나의 문으로 된 봉쇄 담장
↙ 순종 → 노동
결과 ←가난 →나눔
↖ 상호 용서
➀각 장상은 권위 행사에 있어서 자신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
➁명령은 어떤 카리스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더 상위의 장상의 권위에 의한 일시적인 지시이다.
➂무엇보다 순종해야 할 것은 규칙이다. 그리고 규칙은 수하 사람들뿐만 아니라 장상들도 지켜야 하는 것이다.
빠코미오의 공동체(Koinonia)가 발전함에 따라 그 규칙은 더욱 중심적인 것이 되었다. 빠코미오는 글을 쓸 때, 성서에 큰 중요성을 두었다. “성서에 의하면” 이라는 말을 그의 글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후, 「빠코미오의 생애」에서 이 표현은 ‘규칙에 의하면’ 이라는 말로 대치되었다.
(5) 상호 용서
공동 소유의 마지막 측면은 이 상호 용서이다. 재정 문제와 관계된 두 번의 연중 집회를 가졌던 초기에, 빠코미오 수도승들은 장부를 뒤적거렸다. 그러나 이 두 집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과실들을 다루는 거대한 총회가 되었다. 특히 여름 집회가 그러했다.
V. 결론
빠코미오와 더불어 진정한 회수도회가 마침 수도승 운동이 시작하던 시기에 탄생하였다. 그것은 확실히 놀랄만한 것이었다. 빠코미오는 기도의 사람, 성령께서 머물러 계셨던 사람이었으며 풍부한 신비적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가 죽기 바로 직전 천국을 보았다는 말을 우리는 들었다.39) 그러나 그는 땅에서 발을 떼지 않은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러한 큰 비전을 안고 살았다. 우리는 이를 빠코미오의 글 안에서 읽을 수 있다.40)
하느님의 거울이었던 빠코미오는 코이노니아가 하느님의 다양한 면모를 반사하는 거울이 되기를 바랐다. 그는 회수도승생활에 대한 숭고한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우리 자신들에게 꼭 들어맞는 세 가지 비유를 통해 그 이상을 우리에게 남겼다.41)
하지만 빠코미오의 죽음 이후 그가 세운 거룩한 코이노니아는 전부 무너졌다. 그토록 급속한 쇠퇴를 맞은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이유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한 곳에 너무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카리스마를 지닌 한 비범한 인물, 곧 빠코미오에게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빠코미오가 죽고 그의 제자인 테오도로도 죽자, 코이노니아 전체가 중심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둘째, 공동체의 성장 역시 너무 빨랐다. 모든 것이 너무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초기에 젊은이들을 양성한 사람은 빠코미오 자신이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더 이상 할 수 없어서 이 일이 수도원이나 집의 장상에게 맡겨졌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들은 빠코미오와 같은 능력이나 성덕을 갖추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셋째, 수도회의 미래를 확실하게 할 수도 있었을 빠코미오의 규칙은 어떤 견고한 신학적이며 영성적인 토대를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했다. 그것들은 규칙과 법규이며, 창설자의 체험의 열매였다. 게다가 영적인 기초가 없었기 때문에 빠코미오가 죽자 분열과 파벌이 생겼다.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생각에 따라 빠코미오의 정신을 해석하여 생활했 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빠코미오의 체험은 그 후 수도승 생활 안에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빠코미오 영성의 두 축인 수직적인 면과 수평적인 면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도 어떤 점에서 빠코미오를 이어받고 있는 것이다.
VI. 종합
문1) 빠코미오의 성소(聖召)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베푼 그리스도교인들의 사랑.
문2) 빠코미오의 공동체는 어떻게 조직되었는가?
☞ 9개의 수도원과 3개의 수녀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수도원은 10개의 부족으로 되어 있었고, 각 부족은 세 개 또는 네 개의 집들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각 집에는 40 명의 수도승들이 살았다. 각 집에는 장상과 그에 딸린 사람들이 살았고, 각 수도원에는 한 명의 압바와 한두 명의 재산 관리 책임자가 있었다. 그리고 한 명의 총압바와 총 재산 관리 책임자가 전 코이노니아를 다스렸다.
문3) 빠코미오는 초기에 겪은 어려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배웠는가?
☞ 수도원은 기숙사가 아니며, 따라서 그것을 결합시킬 수 있는 어떤 경제적인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고 공동체를 섬기는데 내놓는 것이다.
문4) 빠코미오 수도승생활 안에서 성서의 역할은 무엇인가?
☞ 성서는 기도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 빠코미오 수도승들은 성서의 어떤 구절들을 마음으로 되새긴 후 그것을 하루종일 반추하며 자신의 기도를 살찌웠다. 끊임없이 되새기는 묵상이 빠코미오의 수도승을 끊임없는 기도로 인도하는 것이다.
문5) 빠코미오 영성의 중요한 두 축은 무엇인가?
☞ ‘하느님과의 일치’와 ‘형제들과의 일치’이다.
문6) 빠코미오가 시작한 수도승생활의 장단점은 무엇인가?
☞장점: 생활 규칙 - 공동체 - 섬김의 이상 - 탁월한 인물
단점: 영적 기반의 부족 - 신학적 빈곤 - 특정한 인물에 대한 지나친 의존 - 너무 급속한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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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보해릭 생애」7-9 참조.
25) 「보해릭 생애」10 참조.
26)「첫 번째 새딕 생애」6 참조.
27)「보해릭 생애」23 참조.
28)「첫 번째 새딕 생애」10-19 참조.
29) 대략 1200 명에서 1400명으로 추정됨.
30)「보해릭 생애」27 참조.
31) 그 길이에 있어 이 부분이 가장 길다.
32)「새딕 생애」3 참조.
33)「보해릭 생애」59 참조.
34) “수도원에 오는 사람은 누구나 먼저 그가 준수해야 하는 바를 배워야 한다. 초기의 이 가르침 후에 그가 만일 이 모든 것에 동의하면, 그에게 시편 스무 편 혹은 사도서간들 중 두 개 또는 성서의 다른 부분을 주어 배우게 할 것이다. 그가 만일 문맹이라면, 그는 제1시, 제3시 그리고 제6시에 그를 가르칠 수 있고 또 이 일을 위해 임명받은 누군가를 찾아가야 한다. 그는 크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사람 앞에 서서 매우 주의 깊게 배울 것이다. 그를 위해 글자를 한 자 한 자 쓸 것이며, 그가 거절한다하더라도 그로 하여금 강제로 그것을 읽게 해야한다. 수도원에 있는 모든 사람은 글을 배워서 성서의 어떤 부분을, 최소한 신약성서와 시편을 암기해야 한다“(빠코미오 규칙, 139-140).
35) “집회를 알리는 나팔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집회 장소에 이를 때까지 성서의 어떤 구절을 묵상하면서 자신의 독방을 나설 것이다. 집회가 끝나면 각 사람은 자신의 독방이나 혹은 공동식당으로 가면서 성서의 어떤 구절을 묵상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묵상 중에 두건을 쓰지 말 것이다“(빠코미오 규칙, 3,28).
36) “하루는 빠코미오가 홀로 기도하던 중 무아경에 빠져들었다. 빠코미오의 눈에 모든 형제들이 성당에 모여 있었는데 우리 주님께서 높은 옥좌에 앉아 계신 것이 보였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복음서에 나오는 비유들을 말씀해주시고 계셨다. 빠코미오는 주님을 뵙고 말씀을 들었는데, 듣는 것과 동시에 설명하시는 말씀들이 다 이해가 되었다. 그날 이후, 우리 사부 빠코미오는 주님이 앉으셔서 형제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본 바로 그 자리에 자신이 앉아서 형제들에게 이야기하였다. 빠코미오가 자신이 주님의 입으로부터 들은 말씀들을 형제들에게 전달할 때였다. 커다란 빛이 그의 말에서 쏟아져 나왔는데, 마치 번쩍이는 번갯불처럼 튀어나왔다. 형제들 모두가 우리 사부 빠코미오의 말을 듣고 몹시 두려워하였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번개가 번쩍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술에 취한 사람처럼 되었다”(보해릭 생애, 86).
37) 「빠코미오 규칙」4-8 참조.
38) “모든 형제들이 함께 모이는 대(大) 집회 동안 여섯 개의 저녁 기도들을 거행하는 일은 최상의 기쁨이다. 그 기도들은 너무 쉽게 거행되어 형제들은 거기서 어떤 부담이나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빠코미오의 규칙, 10).
39)「보해릭 생애」114 참조.
40) “형제들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당신이 환시 중에 본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청하였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 같은 죄인은 하느님께 환시를 보여달라고 청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고 오류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들어보시오! 내가 당신에게 위대한 환시에 대해서 말해 주겠소. 만일 당신이 어떤 순수하고 겸손한 사람을 보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위대한 환시가 아니겠소! 하느님의 성전인 보이는 사람 안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는 것, 이보다 더 큰 환시가 어디 있겠소?’”(보해릭 판 ‘빠코미오의 생애’, ?).
41) “빠코미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코이노니아에서 훌륭하게 사는 사람들의 영광과 공로가 은수자들의 그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겠소. 그것은 매일 시장에서 빵이나 야채 혹은 그 밖의 다른 것을 파는 상인과 같습니다. 그는 큰 부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그에게 필요한 어떤 것이 부족하지도 않습니다. 은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은수자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며, 그들의 모범에 실려서 따라 가지도 않습니다. 그의 순수한 삶, 단식, 기도, 그리고 고행들은 그 상급을 받게 되고, 그가 영원한 생명을 잃지 않게 합니다. 하지만 그는 하늘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얻지는 못합니다. 여기 코이노니아의 겸손한 형제들에 대한 또 다른 비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지나친 고행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제정된 규칙에 따라 순명과 정결, 그리고 순수함의 길을 걸어갑니다. 은수자들은 이 형제들이 완전한 삶을 살지 못하며 또 매우 보잘것 없다고 믿습니다만, 실제로 그들은 왕의 마음에 드는 종들과도 같습니다. 그들은 왕의 궁궐을 자유롭게 출입합니다. 반면 그 위대한 사람들은 종들에게 청하지 않고는 거기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은수자들보다 훨씬 더 뛰어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친절과 인내로 서로 섬기십시오’라고 씌어져 있는 바와 같이 계속해서 서로를 섬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또한 코이노니아 안에서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사람들의 과실과 잘못들은 은수자들의 그것보다 더 심각한 추문임을 보여주겠습니다. 어떤 상인이 날씨를 가리지 않고 항해할 때, 만일 그의 배가 사고를 당하지 않으면 그는 매우 부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난파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그와 그의 모든 부는 사라질 것입니다. 이처럼 진보하여 아무도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는 회수도승은 더 많은 공로를 얻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어떤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그의 소홀함으로 인해 그에게 화가 미칠진저. 그는 단지 자기 영혼을 잃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가 걸려 넘어지게 한 그 영혼에 대해 하느님께 헴바쳐야 할 것입니다‘“(보해릭 판 ‘빠코미오의 생애’, 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