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9일 목요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강론 | 2014. 10. 9. 16:41
Posted by PaChoeConTe

1독서: 갈라 3,1-5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복음: 루카 11,5-13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제목: 가장 좋은 청원기도


오늘 복음은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청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 본 사람은 압니다. 청해도 잘 안 주시고, 찾아도 잘 얻지 못하고, 문을 두드려도 잘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기도의 응답이 없는 것을 두고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을 생각하며 자신의 부족한 정성을 탓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느님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실까요?


오늘 복음은 청원기도가 들어 허락되는 세 가지 차원을 보여줍니다.


첫째, 항구하게 청해야 합니다. 빵 세 개든, 서른 개든 선행을 위해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놓고, 부정적인 응답이 오든 말든 꾸준히 계속 청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불가능해 보이던 일들, 가령 화해와 용서, 정의와 평화 같은 기적이 이루어집니다.


둘째, 청한 것은 안 들어주시고 청하지도 않은 것을 받았을 때, 하느님께서 나에게 필요한 더 좋은 것을 주셨다고 믿어야 합니다. 교만과 이기심의 유혹에 자주 빠지는 우리는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셋째,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하고 기도한 다음, 모든 일들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다 잘 되어가리라 믿고, 무엇에나 감사 기도를 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임을 믿는 것입니다. 어떻게 청해야 할지 구체적인 방법을 몰라도,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침묵과 신뢰와 사랑을 배웁니다.


미사 안에서 말씀을 듣고, 신자들의 기도를 바치고,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며,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신 사람은 믿음 안에서 깨닫게 됩니다. 자기는 일용할 양식인 빵 세 개를 청했는데, 주님께선 영원한 양식인 빵 한 개, 곧 생명의 빵인 당신의 몸을 주셨음을 깨닫고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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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7일 수요일. 성녀 모니카 기념일

강론 | 2014. 8. 27. 20:25
Posted by PaChoeConTe

1독서: 2테살 3,6-10.16-18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

복음: 마태 23,27-32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


제목: 회칠한 무덤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2테살 3,10). 이 말씀은 하느님을 핑계로 게으름을 피우며 무질서한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 주는 사도 바오로의 경고입니다. 자기 손으로 일해서 벌어 먹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오늘 화답송도 노래합니다. 그런데 사람들 가운데에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이 없어서 못하는 사람도 있고, 일은 있는데 그 일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있는 벌이가 되지 않아서 안 하는 사람, 벌이는 되는데 계속 죄를 짓는 일이라 양심상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라는 말은 그저 정신 차려서 스스로 힘쓰라는 말일 뿐 진정한 영성적 권고가 될 수 없습니다. ‘열심히’ 하기 전에, ‘무엇을’, ‘왜’ 열심히 하는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새 일의 노예, 관습의 노예, 악의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회칠한 무덤”(마태 23,27)같다고 꾸중을 들은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바로 그렇게 자신들도 모르는 새 악의 노예가 되어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회칠한 무덤도 알고 보면 그렇게 나쁜 말이 아닙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시체나 무덤에 몸이 닿인 자는 모두 칠 일동안 부정한 몸이 되었습니다(민수 19,16 참조). 무덤에 회칠을 한 것은 ‘여기는 무덤이니 손대지 마시오’ 하는 뜻의 친절한 사랑과 섬세한 배려였습니다. 파스카 축제를 멀리서 예루살렘으로 온 순례객들이 어디가 무덤인지 때로는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무덤처럼 동굴로 된 것은 그래도 회칠 덕분에 알아보기 쉬웠지만, 가난해서 그저 평평한 땅에 우리처럼 봉분도 없이 시신을 모신 무덤은 회칠도 못해서, 순례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위를 마구 걸어다녔고 자동으로 부정한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루카 복음에서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루가 11,44)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그런 뜻이었습니다. 파스카 축제를 잘 준비하기 위해서, 무덤에 회칠을 하고 몸을 정결케 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왜 온갖 악의와 탐욕과 교만은 마음 속에서 치워버리지 않느냐하는 질책이었습니다.


사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회칠한 무덤’이 될 때가 있습니다. 미사 때마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하고 가슴은 치지만, 무엇이 자기 탓인지, 왜 남 탓이 아니고 자기 탓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된 믿음은 성실함 이전에 먼저 진실함에 있습니다. “사람 안에서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1요한 2,5 참조)되려면,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되 그리스도의 마음을 먼저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수고와 고생을 하며 밤낮으로 일한 보람이 정의와 평화의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성녀 모니카는 아들 아우구스티노의 회개를 위해 일생을 눈물로 기도하고 노력했고, 마침내 아들의 회개를 보며 선종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성녀처럼 우리 자신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이 겉치레를 뛰어 넘어 존재의 중심에서 내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도록 주님께 회개의 은총을 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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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26일 화요일. 연중 제21주간 화요일

강론 | 2014. 8. 26. 07:42
Posted by PaChoeConTe

1독서: 2테살 2,1-3ㄱ.14-17 <여러분이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복음: 마태 23,23-26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실행해야만 한다.>


제목: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 두 번의 “불행하여라”도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는 말씀입니다.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어서 무엇이든 철저히 규정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특히 십일조를 지키는 데 철저했습니다. 신명기 14장을 보면, “너희의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분의 일을”(23절) 바치라고 주님께서 명하셨는데, 이 음식들을 주님인 당신께서 잡수시려고 바치라고 하신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속 재산도 없는 레위인과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가 와서 배불리 먹게”(29절)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바친 것은 물론이요, 박하와 시라와 소회향까지 십일조로 바쳤습니다. 박하는 사탕, 껌 등 먹거리에 박하 맛을 낼 때 넣는 허브이고, 시라는 파슬리 같은 허브 이파리로서 음식 맛을 내는 조미료이며, 소회향은 카레 가루 만들 때 들어가서 강한 독특한 향을 내는 씨앗입니다. 이 셋은 모두 다 음식에 넣는 향신료입니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 보면, 이들은 레위인과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들을 위하여 먹거리 뿐만 아니라, 그 먹거리 위에 참기름 깨소금까지 뿌려서 준 셈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데 정말 할 만큼 다 한 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무엇 때문에 그들을 보고 “불행하다”고 하십니까? 그들이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처럼 율법에서 더 중요한 것들을 무시하기 때문”(마태 23,23)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십일조의 참뜻은 이웃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관심 가져주라는 것인데, 바리사이들은 이웃이 어떤 처지에 있든 그저 내가 지켜야 할 외적 규정에만 신경 쓰며 마음이 좁아져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이 좁아져 무엇이 주님의 진정한 뜻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그들을 두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눈먼 바리사이야! 먼저 잔 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26절).


마음이 깨끗하면 사랑은 저절로 나옵니다. 나의 이웃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고 있으면 마음이 아파서 그냥 모른 체 하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가 잘 되도록 기도를 하고,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을 해주게 되고, ‘그에게 필요하겠다’ 생각되는 것을 마련해주고자 뛰어다니게 됩니다. 천지창조 때부터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시의 핵심은 단 하나, “하느님은 사랑이시다”입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통해 듣고 매일 미사성제를 통해 거행하는 교회의 전통도 단 하나, “우리 서로 사랑하자”입니다. 들으면 쉽지만 실천하기는 두려운 이 사랑. 주님께 간절히 청하면 주십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2테살 2,17) 해주십니다.

                                (2008년 8월26일 요셉수도원에서 한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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